“이 글은 책을 읽고 떠오른 망상입니다. 대부분 추측이 들어있는 헛소리니 재미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근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라는 책을 봤다. 좀 두꺼운 책이다 보니 많은 게 기억나진 않는데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농업 혁명에 관한 얘기였다. 유발 하라리는 농업 혁명을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여기며, 인류 스스로 덫에 걸렸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강렬했던 이 문장을 보고 나는 ‘인류가 아닌 자연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우리는 스스로 덫에 걸린 것이 아니라, 인류를 발전시키기 위한 자연의 급류에 휩쓸려 버린 것이 아닐까?’ 라는 아주 건방진 생각이 들었다.
먼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을 말하자면, 역사적으로 인류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위대한 발명가, 지도자들은 타고난 뇌와 주변 환경, 운 등등 정말 다양한 요소가 합쳐져서 아주 극악의 확률로 등장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자들을 편의상 ‘설계자’라고 부르겠다.) 이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적으로 인구가 늘어나야 하거나 생존이나 교육 등 기본적인 생활 여건이 좋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설계자들이 등장하는 것과 농업 혁명이랑 뭔 상관이냐 물을 수 있다. 그에 대한 내 헛소리를 이어서 적어보겠다.
과거 수렵 채집 시절은 인간의 기본적인 무리 크기가 대략 20~50명, 최대 100명 안팎이었다. 그때 태어난 설계자들은 아마 우두머리, 제사장, 길잡이 등과 같은 역할을 맡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에게 맡겨진 임무는 무리를 올바르게 이끄는 것으로 지금에 비하면 무리에 속한 인간의 수가 적기 때문에 그다지 커다란 임무는 아니었다.
이후 인류가 우연히 씨앗을 거두는 법을 알게 되면서 농업이 시작되었다. 인간들은 정착을 하기 시작했고 무리의 단위는 점점 커졌다. 늘어난 인구 + 비교적 일관된 식량 공급 + 정착으로 인한 안정된 삶은 설계자들이 나타날 확률을 높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등장한 설계자들은 살아가면서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바로 늘어난 인간들을 하나로 뭉칠 능력과, 식량난을 해결할 기술이었다. 이에 설계자들을 비롯한 무리들은 폭발한 인구를 감당하고 협력시키기 위해 농업 생산력을 고도화하고, 종교라는 거대한 협력 혹은 통제 시스템을 빌드업 해 냈다. (종교의 탄생은 다양한 주장이 있음.)
종교라는 믿음 속에서 하나가 된 인류는 더더욱 커져갔고, 발전해가는 사회 속에서 더 많은 설계자들이 탄생했을 것이다. 설계자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게 되었고 인류는 순탄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18세기, 인류는 더 이상 기존 농업 시스템만으로 부양이 불가능했다. 이에 설계자들은 석탄, 증기기관을 비롯한 기술들을 발명해 냈다. 수렵 채집 시대에서 농업 시대로 넘어갔듯이, 농업 시대에서 산업 시대로 넘어간 것이다. 이렇듯 인류는 늘 발전된 기술과 늘어난 인구 때문에 병목기를 맞이하고, 이로 인해 설계자들은 항상 다음 챕터로 넘어갈 수 있는 무언가를 극적으로 발명해낸다. 이게 역사적인 패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산업 시대를 넘어서 디지털로, 그리고 현재 AI 시대까지. 인류가 늘 병목을 겪을 때마다 세계를 바꾸는 천재들이 등장해 다음 챕터로 넘어갈 수 있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든 현재든 가장 큰 문제를 갖고 있다. 바로 ‘노동’ 이라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인류는 노동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게 됐다. 유발 하라리는 이 시작점이 바로 농업 혁명이고, 인류는 스스로 덫에 걸렸다 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초반에 말했듯이 우리는 스스로 덫에 갇혀버린 것이 아닌, 인류라는 생명체를 발전시키기 위한 자연의 급류에 이미 빠져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이 든다. 인류의 농업 혁명은 결과적으로 보면 인간을 뭉치게 하며 더 많은 인간이 태어날 수 있게 한 시작점이다. 인구가 늘고 환경이 좋아질수록 설계자들이 나타날 확률 또한 올라갈 것이고, 수많은 설계자들은 세계를 바꿀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인간으로 봤을 때 우리는 매일같이 노동을 하며 희생을 하지만 인류로 봤을 때 우리는 더더욱 늘어나고 발전해 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자연의 매정하고도 차가운 현실일 수 있다. 자연은 그저 생명체가 자라고 성장할 환경을 조성할 뿐, 생명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는 궁금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매정함 속에서 우리는 이제 디지털 시대를 넘어 AI 시대에 들어왔다. 설계자들이 만들어낸 AI는 수많은 뛰어난 이들을 대체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낸 존재로 인해 더 이상 인류는 가장 위대한 존재가 아닐 수도 있다. 병목이 발생해도 이제는 설계자들이 아닌 AI가 문제를 해결할지도 모르고, 그들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우리는 아예 모를 수도 있다. 이는 마치 발전의 주체가 뒤바뀌어버린 느낌이다. 어찌 보면 자연은 완벽한 존재를 탄생시키고 싶어 했고, 우리는 AI라는 완벽한 존재를 탄생시키기 위한 중간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인류사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AI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까? 그나마 다행인 건 AI 역시 물리적 한계에서 자유롭지는 않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새로운 AI 시대의 병목일지도 모른다. 그 병목을 극복해버리면 정말로 기존의 인간은 인간의 주체성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내 생각에 우리가 가진 힘은 다른 무엇도 아닌 ‘유대’ 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따로 적진 않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설계자라 한들 타인과의 유대감에 비롯한 결속이 없었다면 문명의 발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AI 역시 시스템적인 협력은 얼마든지 해낼 것이다. 하지만 오직 이익과 효율만을 쫓는 그들에게는 인간적인 갈등이나 분열이 존재하지 않는다. 분열이 없다는 것은 결국 가장 뛰어난 하나의 AI가 다른 모든 시스템을 통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인간의 세계에는 상류층의 통제나 사회적 불평등 같은 어둠이 존재함에도, 유대로 인한 뭉침이 있기에 권력의 일방적인 통제를 막고 밸런스를 유지해 왔다. 유대는 단순한 감정을 넘어, 타인과 공감하고 연대하는 인간 고유의 주체성 그 자체다. (유대를 얘기한 나루토는 역시 명작인듯)
이러한 우리의 힘을 소중히 해야 AI 에게 그나마 대항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부디 우리의 이야기가 거대한 시스템의 밑거름이 아닌 만개하는 꽃이 되길 바라며 이야기를 마친다.